[전시서문]
피어 컨템포러리는 2024년 3월 13일부터 3월 30일까지 임현하 작가의 개인전 < 알고리즘 다이어리 Algorithm Diary >를 진행한다. 이 전시는 MnJ문화복지재단이 주최하고 후원한 “2024년 청년 예술가 개인전 지원사업: FOR YOUTH FIVE SPACES”을 통해 선정된 임현하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이다. 학부 및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임현하 작가는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에서 보여주는 디지털 광고 이미지를 소재로 삼아 작업활동을 해오고 있다. 플랫폼(인스타그램) 내에서 사용자 맞춤형 광고 이미지를 수집하여 재구성하고 편집한 이미지를 작품에 활용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역시 작가가 수집하고 재구성한 디지털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프린트되어 주름을 만들며 전시된 이미지들은 쉽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디지털 광고와는 다르게 캔버스 위에 그려진 ‘명작’들처럼 천의 재질을 강조하는 제스처로 ‘회화’임을 알린다. 전시장 입구부터 시작되는 작품 은 알고리즘이 작가에게 띄워주는 광고 이미지들을 모으고 프린트한 천으로 만든 매듭이다. 이 매듭은 전시장 전체를 관통하며 지나다니고 뭉쳐있고 걸려있고 놓여있다. 공예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위트하임 자매Margaret and Christine Wertheim의 작업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들이 수학과 코바늘뜨기를 결합시켜 인공세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면, 임현하는 알고리즘 광고의 휘발성과 반대의 지점에서 수작업으로 노동을 자처하며 이를 다시 미술작품으로 치환한다.
거대자본의 중심에 글로벌 광고 회사가 위치한다는 점은 현 시점에서 디지털 광고를 위한 금액이 얼마나 많이 지불되고 있는지를 충분히 가늠케 한다. 제작된 광고 이미지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과거 검색했거나 찾아봤던 게시물에 기반하여 잠재적 소비자에게 노출된다. 이러한 과정은 비슷한 ‘취향taste’을 가진 이들을 겨냥한다. 작가는 어느 시점부터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광고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재편집하여 자신의 창작물에 사용한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를 위해 생산된 디지털 이미지가 다시 작가의 품을 거쳐 물질이자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광고가 의도했던 것은 이 광고에 노출된 작가의 구매행위이지만, 작가는 이 광고들을 자신의 창작 재료로 삼았다.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이 재구성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다시 판매가능한 아트굿즈로 만든다. 이러한 굿즈들은 전시를 관람하고 나서는 길에 ‘취향’에 맞는 소비자를 만나게 되어 판매되길 기대한다. 이 모든 과정이 입구이자 출구에 위치한 작품 < You may also like >인 셈이다. 오리지널 광고의 기능은 제 몫을 상실하다 못해 역으로 새로운 구매자를 기다리는 상품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뱅크시의 영화 <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처럼 본연의 목적과 의도가 상실되다 못해 전복되어버린, 게다가 그 전복이 흘러 흘러 “예술art”이 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지점에 작가의 위트와 함께 현대문화의 핵심 중 하나인 변이displacment를 짚어 볼 수 있다.
작가는 < 알고리즘 다이어리 >라는 제목처럼 맞춤형 광고가 담긴 일기장을 기꺼이 열어 보여주면서 이를 활용한 작품들로 다시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호기심이 시작되면서 ‘취향’에 따라 수집되고 재구성된 이미지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질문하게 될 것이다. 임현하는 호기심을 자극하여 질문을 던지는 이러한 작가적 행위를 통해 알고리즘 체계에 이끌려 점점 깊어져 가는 동굴, 취향이라는 개념에 대해 의심 어린 시선으로 재고해보기를 전시 전반에 걸쳐 재치 있게 권유한다. (피어 컨템포러리, 2024)
[작가노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개인들은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정보를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소셜미디어 내부에서 하루에 수천 개의 디지털 광고 이미지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무의식적으로 누적되어 우리의 생각, 가치관, 주관성에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디지털 이미지는 단시간에 다수의 이미지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소셜미디어에서 이러한 이미지는 계산적이고 집요한 노출 횟수와 패턴을 통해 우리의 사고 방식과 견해에 영향을 미친다.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이 활발히 사용되기 이전에는 사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능동적으로 탐색했지만, 현재는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소셜 미디어)이 사용자의 흥미와 관심을 끄는 컨텐츠를 제공하여 사용자가 무의식적으로 간편한 경로를 택하게 한다. 나는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에서 나에게 맞춤형 광고 이미지를 매일 수집한다. 이 이미지들은 나의 온라인 활동 이력을 기반으로 계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의 특징을 보여준다. 하루 단위로 수집된 이미지는 디지털 콜라주로 조합되어, 인스타그램 내에서 개인 맞춤 이미지를 상징한다. 이 디지털 콜라주는 네트워크에 속한 여러 사용자에게 공유되며, 빠르게 다가오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나의 작품은 현대인들의 주관적 사고와 능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품을 통해 몸소 능동적인 태도를 실천하며, 이러한 특성을 가진 디지털 이미지를 관찰하도록 제안한다. 더 오래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보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컨텐츠에 지배되기보다는 이용자로서의 입장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온라인 환경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디지털 콜라주를 물리적인 재료인 천에 대입하여 더 나아가 빛 반사, 재질감, 중력감 등과 같은 관찰 요소를 추가한다. 이로써 이미지는 빠르게 관찰되는 것에서 느리게 관찰되는 것으로 전환되어, 관찰자로 하여금 이미지를 더 오래 주시하여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이 작업을 통해 작품은 결과와 과정, 두 가지 측면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첫째로, 완성된 작품은 물리적인 재료를 활용하여 디지털 콜라주 이미지를 드러내어 온라인 디지털 이미지의 빠르게 소비된다는 특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물리적인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디지털 이미지보다 비교적 느리게 소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관찰자에게 무분별한 온라인 이미지 소비에 대한 인식을 제공한다. 둘째로,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수공예적 행위를 강조하여 능동성을 부각시킨다. 온라인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맞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사용자의 주관성과 능동성을 유지하며, 물리적인 천에 새겨진 온라인 디지털 이미지를 주체적으로 다루는 것을 상징한다.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불가피한 사용으로 인해 사용자로서 경험하는 능동적 사고의 감퇴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나의 작품은 사용자들이 온라인 소셜 미디어에서 보이는 디지털 이미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고민하도록 유도하며, 작품을 통해 미디어 소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임현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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